智異山 자료/지리산 여행

삼봉산~백암산~금대산 종주(월간마운틴)

지리산바이러스 2009. 10. 28. 16:54

 

삼봉산 - 금대산 종주 산행

지리산 최고 전망대, 산 밖에서 산을 보다...  11.9km 4시간 50분

 

산행 날짜: 06년 8월 8일 / 월간 <마운틴> 06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경상남도 서북단에 위치한 함양군은 동으로 산청군, 서쪽에는 전북 남원시와 장수군, 남쪽엔 하동군, 북쪽으로 거창군과 인접한 전형적인 산악 소도시다. 남한 내륙 최고봉 지리산(1915m)을 발 아래 두고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으며, 장수군과 어깨를 맞대어 봉화산(919.8m)~깃대봉(1014.8m)~남덕유산(1507.4m)까지 백두대간 등줄기를 주도한다. 조그만 품에 지리산과 덕유산을 모두 품은 것도 기특하지만, 그 줄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들도 여느 산군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

 

함양의 뒷산 괘관산(1251.6m), 그 동쪽 지척의 천황봉(1228m)과 도성산(1044m), 거창군과 경계를 이룬 금원산(1352.5m), 용추폭포가 장관인 기백산(1350.8m), 이름값 제대로 하는 백운산(1278.9m)과 서래봉(1076m), 지리산 세석고원과 닮은 월봉산(1279.2m), 육십령 북쪽 할미봉(1013m), 정유재란 때 왜군을 맞아 힘써 싸웠던 황석산(1190m), 억새밭이 장관인 거망산(1184m) 등, 여타의 도시에선 한 개도 찾기 힘든 1000m급 고봉들이 말 그대로 ‘발에 차일’ 정도다. 특히 기백~금원~거망~황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군내의 ‘지리’ ‘덕유’와 더불어 1박 이상 종주산행으로 제격이다.

 

큰 산을 줄줄이 거느렸으니 이 땅이 품은 계곡이며 풍류 역시 결코 뒤쳐지지 않을 터.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 덕분에 진리삼매경에 빠진 곳’이라 하여 ‘심진동’으로 불리는 용추계곡, 남덕유산에서 발원해 남강의 상류가 되어주는 화림동, 지리산 최고 비경 칠선계곡과 백무동(한신계곡)이 그것, 정자문화의 보고로 꼽히는 농월정•동호정•거연정 등이 남아 ‘좌안동 우함양’으로 불리던 이 지역의 선비문화를 대표한다.

 

 

산 길

함양에 뿌리를 둔 1000고지 산중에서 지리산국립공원과 가장 근접한 봉우리는 삼봉산(1186.7m)이다. 함양읍과 마천면, 전북 남원시 산내면 경계에 솟은 삼봉산과 그 아래 백운산(902.7m)~금대산(847m) 능선은 엄천강 물줄기에 의해 지리산과 나뉘었지만, 삼봉산 기운은 서쪽 투구봉(1068m)에서 팔령을 지나 전북과 경남의 도경계를 가르며 연비산(842.8m)~안산(641m)~아홉새드리를 거쳐 천왕봉을 출발한 백두대간과 맞닿는다. 이 혈맥은 육십령~덕유산으로 이어지니, 남녘의 큰 산줄기 지리산과 덕유산의 양대 기운을 모두 품은 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산들은 지리산을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가 되기도 한다.

 

동서로 길게 누운 삼봉산은 급경사가 많아 대체로 산세가 험한 편이나 남원 산내 쪽으로 신라 고찰 실상사와 백장암을, 마천 쪽으로는 금대암을 두는 등 산의 유명세에 비해 명찰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실상사에는 삼층석탑(보물 제37호)•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 제33호)•탑비(보물 제34호)•석등(보물 제35호)•부도(보물 제36호)•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 등이 있고, 백장암에는 국보 제10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가까운 지리산을 두고 해인사의 말사가 된 금대암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전나무가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돼 보호 받고 있다.

 

삼봉산 산행 초입은 대략 네 군데로 요약할 수 있는데, 남원과 함양을 잇는 24번 국도 상의 팔령에서 투구봉으로 오르는 길이 약 4.75㎞, 상죽림을 거치는 길은 2.6㎞. 오도재에서는 3.9㎞이다. 해발 773m인 오도재까지 차량 통행이 가능하므로 삼봉산을 더듬는 길이 다소 편하다. 남원 산내면 백장암에서도 삼봉산까지 오를 수 있다. 금대산에서는 금대암을 둘러본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60번 지방도로 내려서거나 엄천강을 가로 지르는 의탄교 앞 금계마을로 오르내릴 수 있다. 의탄교를 건너면 지리산 칠선계곡이 있는 추성리다.

 

삼봉산과 백운산 사이의 등구재는 산내(남원)와 마천(함양), 전북과 경남을 잇는 고갯마루다. ‘등구’라는 지명은 ‘거북이 기어 올라간 지형’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등구 마천 큰애기는 곶감 깎기로 다 나가고, 효성 가성 큰애기는 산수 따러 다 나간다’라는 민요가 구전될 만큼 감나무가 많다. 판소리 6마당 중 가루지기타령에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으로 정착해 살던 곳도 등구 마천이다

지리산 전망대로 통하는 삼봉산

오도재에 도로가 뚫린 건 2003년 11월. 함양군 마천면 엄천사 도솔암에서 수도하던 청매 인오조사(1548~1623)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득도한 터라 ‘오도재’란 이름을 얻었다. 벽소령과 장터목을 거쳐 온 남해 하동의 해산물이 삼봉산~법화산(992.4m) 사이의 오도재를 통해 전북•경북•충청도로 운송되었다. 마천장이 열리기 전에는 모두들 오도재를 넘어 함양장으로 향했다고도 한다. 고종 25년(1888년)까지 제한역(함양읍 구룡리 조동)을 두어 이곳을 오가는 이들과 산물을 관장케 했다니 꽤나 규모가 컸을 것으로 짐작할 뿐. 2006년, 건설교통부에서 발표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경상도의 아름다운 길 18선’에 지안재와 오도재(지방도 1023호선)가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오전 8시 30분, 오도재 정상 화장실 옆에 차량을 주차해두고 1:2만5천 지형도(도엽명 가흥) 한 장을 펼쳐 놓는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서쪽을 향해 고개를 드니 화장실 옆 넓은 임도와 장승 여러 기가 손을 내민다. 아무 의심 없이 넓은 길로 들어서지만 이 길은 휴천면 월평리로 이어지는 4.34㎞짜리 임도. 길은 한없이 휘어져 있고 등뒤로 삼봉산 능선이 자꾸만 멀어진다.

 

오전 8시 52분, 다시 오도재 화장실 앞으로 돌아와 산행을 시작한다. 8월 현재 ‘지리 제1문’이 공사 중이고, 건축물 옆으로 아슬아슬 초입이 가려져 있다. 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9월말 혹은 10월이면 삼봉산과 법화산 양쪽 들머리에 나무계단이 설치될 예정이란다. 그때면 어리석은 초행자라도 길을 놓칠 이유가 없겠다. ‘오도산령신지위’라 적힌 비문과 해학적인 장승들을 곁에 두고 산으로 든다. 곧 계단으로 연결될, 따라서 이 흙길 위에 마지막 발자국을 찍으며 10분쯤 올라서니 쉬어 가기 좋은 정자(관음정)가 나온다. 잠시 땀을 식히고 본격적인 등산로로 들어선다.

 

오르막으로 치닫던 길은 한풀 숨을 죽인 반면 그간 사람의 출입이 뜸했는지 길 좌우로 가시풀이 지천이다. 팔뚝에 빨간 줄을 그어가며 10분쯤 진행하면 좁은 안부다. 발 아래 숲 사이로 허연 임도가 드러난다. 간벌작업을 하는지 가끔씩 요란한 전기톱 소리가 바람에 묻어난다. 산행 중 처음으로 사방이 트인 바위를 지나면 삼봉산이 1.65㎞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내리막과 평지로 사이 좋게 이어지던 길이 작은 갈림길을 펼쳐 놓지만 무시하고 직진한다. 이후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등산로 옆으로 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폭염에 그늘도 없어 선뜻 올라설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전망을 버리고 그늘 속 등산로로 진입한다.

 

오전 11시 39분, 첫 기착지 삼봉산에 닿는다. 지리산 천왕봉 동쪽엔 하봉~웅석봉을 주축으로 한 동부능선이, 서쪽으론 반야봉~만복대로 이어진 서북릉이 펼쳐진다. 지리산에서 다소 벗어난 필봉산(848m)•황매산(1108m)•월봉산•기백산•금원산 등도 보이니, 산의 위치와 그 모양새를 정확히 짚어낼 능력만 된다면 함양 주변의 산세를 손금 보듯 훤하게 꿰뚫을 수 있다. 가마솥 안처럼 푹푹 찌는 더위 탓인지 하늘이 아주 맑지는 못하다. 눈에 보이는 산들 몇 개만 짚어보고 텅빈 정상을 벗어난다. 삼봉산 아래의 그늘 쉼터가 지리산 전망보다 더 반가울 지경이다. 조망의 즐거움도 지독한 더위나 혹독한 추위 앞에선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금대암까지 5.95㎞ 남았다.

백운산 지나 금대산까지

삼봉산에서 내려서면 창원마을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1:2만5천 ‘가흥’에는 이 지점을 ‘등구재’로 표기하고 있지만, 실제 등구재로 불리는 곳은 조금 더 가야 한다. 내리막으로 이어지던 길이 잠시 키를 높이면서 시원한 바람이 분다. 봉우리를 제하곤 등산로 모두 빼곡한 숲이다. 낮 1시 29분, 삼봉산에서 3㎞, 금대암까지는 2.95㎞ 남은 잘록한 안부에 닿는다. 영진문화사가 펴낸 1:5만 지형도에선 이 지점을 등구재로 적고 있다. 대체로 지리산국립공원이 입산통제에 들어가는 봄과 가을에 주로 찾는 산이어서, 이 등구재는 ‘경운기 한 대쯤 지날 임도’로 묘사돼 있다. 지형도 상으로도 산내와 마천의 논밭이 가깝다. 식수를 따로 구할 수 없는 산이므로 산행 전 충분히 챙겨야 하지만 죽을 것처럼 목이 마를 경우 삼봉산 방향을 등지고 우측으로 10분쯤 진행하면 식수를 구할 수 있다. 등구재 안부에서 백운산까지는 꾸준한 오르막이다.

 

무성한 잣나무 조림지를 지나니 곧 백운산, 휴식을 제하고 약 35분쯤 걸린다. 정상엔 반 토막뿐인 무덤 1기가 남았고, 덕분에 정상석은 구석 한쪽으로 물러서 있다. 수풀이 무성할 땐 그 풀에 정상석이 가려져 지나치기 쉽다. 우스갯소리로 요즘 가장 좋은 묘자리는 ‘묘 앞으로 자가용이 지나고 묘 뒤로 버스가 지나는 곳’이라던가. 성묘를 오는 후손들에겐 백운산 정상에 모셔진 조상의 묘가 결코 명당은 아니었는지, 주인 모를 이 무덤은 반이나 깎여져 자칫 무심히 쌓여진 흙더미로 오해 받는다. 정상석~무덤과 일직선 나무 사이에 천왕봉이 가깝다.

 

백운산에서 금대산도 지척이다. 약 1.7㎞. 바위로 이뤄진 금대산에 다가설수록 등산로는 삼봉산 구간과는 달리 시야가 트이며 시원하다. 이름 모를 바위에 올라서자 마천 일대와 걸어온 오도재~삼봉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외로운 고사목 하나가 바위 틈에 뿌리를 두고 앙상한 뼈처럼 꽂힌 곳도 있다.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바위에 올라서니 멀리서 뵈던 산불감시초소 건물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대산이다. 마지막 산에서 실컷, 지리산과 그 산에 기대어 사는 지리산민들의 터전을 굽어본다. 그런 후에야 0.6(혹은 0.8)㎞ 아래의 금대암으로 내려선다.

 

전통사찰 제84호로 등록된 금대암은 신라 무열왕 3년(656) 행호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다. 경내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3층석탑과 문화재 자료인 동종(제268호), 신중탱화(제269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212호인 전나무가 있다. 조선시대 문인 김일손이 쓴 기행문(1489년 4월 16일)에 따르면 20여 명의 스님이 정진도량하고 있었다 한다. 유효인(1445~1494)의 시 중에는 ‘잘있느냐 금대암아 / 송하문이 옛날 같구나 / 송풍에 맑은 꿈 깨어 문득 잠꼬대를 하는구려’ 라는 시가 남겨져 있다고. 금대암의 전나무 수령은 대략 500여 년. 높이 40m, 둘레 2.92m로 현존하는 전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 된 것이다. 금대암 물로 목을 축이고 산사를 벗어난다. 오도재를 떠난지 얼추 8시간. 실제 산행은 5시간이 못 되니 그야말로 숲에서, 봉우리에서, 한없이 쉬고 놀던 꿈 같은 산행이 되었다.

교통과 숙박

동서울터미널(www.busnara.com)에 오전 8시 20분, 10시 30분, 오후 1시 20분, 3시 20분, 5시 30분, 7시, 밤 12시에 각각 함양과 인월 등을 거쳐 백무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이 버스가 마천에 정차하는데 승차시 마천에 내릴 것을 미리 얘기해두는 것이 좋다. 다만 마천에서 산행 초입인 오도재까지 가는 대중교통은 없으므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지나는 차를 얻어 탈 수도 있지만 여의치가 않다. 산행 종료 후 금대암에서 시멘트 길을 따라, 혹은 금계마을에서 60번 지방도로 내려서면 인월~함양을 오가는 차편을 쉽게 탈 수 있다. 고속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남원으로 간 다음 남원에서 인월을 거쳐 마천으로 가도 된다.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도 함양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

 

함양에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가 지나는 등 3개(서상•지곡•함양)의 나들목이 열려 있어 비교적 접근이 쉬운 편이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함양 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 함양IC로 나온 다음 함양읍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지안재와 오도재가 있는 1023번 지방도를 탄다. 88고속도로 함양IC에서 인월~마천을 거치거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산청IC에서 함양 유림 방면으로 60번 지방도를 탄 다음 휴천면으로 이동한다. 차량 한 대로 움직일 경우 회수를 용이하게 하려면 마천쯤에 주차를 하고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할 듯하다. 마천 택시 055-962-5110. 마천에서 오도재까지의 택시 요금은 1만원이다. 하산 후엔 군내버스나 지나는 차를 얻어 타고 마천으로 이동한다.

 

숙박은 백무동이나 함양읍내에서 하는 것이 좋다. 지리산 천왕봉과 세석고원의 초입이 되는 백무동에는 민박과 펜션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함양읍엔 24시간 영업하는 찜질방 ‘중앙레스파(055-963-0606)’가 있다. 이용료는 5천원이다. 마천면소재지에 있는 ‘소문난짜장(055-963-3799)’은 지리산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인데 외팔이 사장 강상길씨는 <나의 프로인생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주변 볼거리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대표적 볼거리는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야전병원으로 사용됐던 벽송사(전통사찰 제12호)다. 경내에는 보물 제474호로 지정된 3층석탑과 민속자료 제2호 목장승,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벽송당지엄영정•경암집책판•묘법연화경책판 등이 있다. 벽송사가 언제 세워졌는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3층석탑의 창건 연대로 미루어 신라말이나 고려초로 추정한다. 조선 중종 15년(1520)에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해 벽송사라 불리며,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소실된 이후 중건돼 오늘에 이른다.

 

서암정사는 벽송사 주차장 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1㎞ 못 미처 있다. 자연석 암반 위에 대방광문•극락전•광명운대•사자굴 등을 화려하고 정교하게 조각해 장관을 이룬다. 오밀조밀한 기암괴석에 온갖 꽃과 나무들로 꾸며진 정원은 ‘지상의 극락세계’로 불릴 정도. 벽송사와 더불어 부쩍 탐방객이 늘고 있다.